| 패배를 복기하면서
5월 25일. 우아한 인턴 서류합격 메일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네이버 1차 면접 불합격 메일을 받았다. 감기에 걸려서 누운 채로 골골대고 있었는데 불합격 메일을 보고 순간 숨이 멎었다. 현실을 부정하면서 진지하게 전산 오류가 아닐까 생각했다. 담배를 피려고 거실로 나왔더니, 아버지가 소파에 앉아서 티비를 보면서 웃고 계셨다. 나와는 다른 차원에 있는 듯했다. 지금 내가 있는 이 너무 쓰라린 현실 속으로 아버지를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가족들에게는 그 다음 주에야 결과를 말했다. 결과를 말했을 때 어머니는 "헢"하시면서 외마디 탄성을 내셨다. 가족들은 그렇게 나와 같은 공간에 있게 되었다.
왜 안 됐을까? 단기적으로 보면 너무 긴장하고 면접을 봤다. 거실에서 면접 답변을 듣고 계셨던 엄마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자신감이 없었고 소극적이었다. 중기적으로 봤을 때는 광고 부문에서 전문성이 없었다. 광고 어드민을 만들었다는 건 구라에 가까웠다. 헐겁게 이어붙인 연관성에 불과하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무조건 이긴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열심히 살지 않았다. 스스로 돌아봤을 때 게을렀고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
차분함을 되찾고 나서 복기를 해보니,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을 후회하고 있었다. '기획서에서 이런 부분을 더 집중해서 썼어야 했다.' '면접 답변에서 이건 이렇게 답변을 했어야 했다' 등등. 결국 그것들은 2~3일의 시간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하루만에 극단적으로 바뀔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통제할 수 있는 건 그 답변을 하기까지 얼마나 깊게 고민을 해보았는지이다. 하루하루의 노력과 고민이 모여서 결과를 바꾼다. 내가 그동안 그렇게 해왔냐고 물어본다면 아니다. 그래서 안 된 거다. 그게 전부다.
| 그대로 한 번은 이겼다 싯팔
우아한 인턴 면접을 보고 나서 떨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면접 당일 아침에 토를 할 만큼 마음과 몸이 지쳐있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고 마음을 다잡았지만 한 번 실패를 겪고 나니, 도전하는 게 두려워졌다. 면접에서도 스스로 만족스럽게 답변을 하지 못 했다. 면접이 끝나고나서 엄마랑 밥을 먹는데, 도저히 밝은 표정을 지을 수가 없었다. 부모님께 죄송스러운 마음이 밀려들어왔고, 스스로가 부끄러워 견딜 수 없었다. 그 이후에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계속 도망쳤다. 현실을 마주하기가 버거워 유튜브만 계속 봤다. 한 번씩 정신을 차려보려고 했지만 하루도 안 되어서 무너졌다. 약 2주 동안의 내 일상은 지독하게 아팠다.
그리고 오늘 합격 메일을 받았다. 기쁜 마음보다는 안도의 한숨이 먼저 나왔다. 경제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벼랑 끝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메일을 확인하고 나서 외마디로 말했다. "그래도 한 번은 이겼다. 싯팔." 피의 게임에서 봤던 그 외마디를 그렇게 내 입으로 말해보고 싶었다. '이겼다'에 중점이 있는 게 아니다. '그래도'와 '싯팔'을 입 밖으로 내뱉고 싶었다. 도망치지 않고 한 번이라도 맞붙어서 이겨내는 것. 그게 내가 바란 거고 이룬 것이다. 아무리 현실이 뭐같아도 도망칠 수 없다.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천국은 없다.
합격 발표 전날 떨어지라도 다시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 혼자 산책을 하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여러 생각이 스쳐지나갔고, 가장 짙게 드는 후회이자 다짐이 있었다.
처음으로 인턴을 구하면서 느꼈던 좌절.
다시는 그 좌절을 느끼지 않겠다고 저 야경을 보면서 앞으로는 다르게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살지 않았다. 거듭해서 허무와 나태의 달콤함에 길들여졌다.
이번에는 절대 잊지 않으려고 한다.
이창호 9단의 말처럼 패배의 아픔을 생생한 날것으로 기억해야 한다.
늘 승자가 될 수는 없지만 패자의 역할에 길들여지지도 않으려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제 다시는 도망치지 않는다.